그릇
이지에프엠의 두 번째 미니앨범 [그릇]이 발매되었다. 독특하게 액자식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앨범에는 사진첩을 한 장씩 넘기며 느낄 수 있는 감성이 담겨 있다. 각 한 장씩 싱글의 앨범아트워크에 그릇의 상징을 담아왔는데 미니앨범에도 그간의 이야기들을 함께 의미하는 그릇들을 배치하고 '우리는 다르지만 함께이다' 라는 의미의 교집합의 이미지를 마지막 페이지로 장식했다. 한 곡씩 차례대로 세상에 공개해온 의미까지 고스란히 곡 순서에 담아 이야기의 흐름을 맞췄다. 첫 번째 트랙 <그릇(prologue)>은 세상에 수 많은 종류의 서로 다른 '그릇들' 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남들과 다르다고 질타를 받거나 당당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마음에 따뜻한 위로와 담담한 응원을 담은 나레이션을 시작으로 두 번째 곡 <여행>으로 이끄는 노래이다. 고요한 마음속에 울리는 북소리를 따라 여행을 떠나보자. 두 번째 트랙 <여행>은, ‘아이가 바라보는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을 어찌 헤쳐 나갈 것인지에 대한 아이의 굳은 결심과 각오가 드러나는 곡이다. 늘 아이들의 안전한 앞날을 기도하며 염려하는 어른들, 그런 어른들에게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는 아이의 용기 있는 여행길을 담은 노래이다. 이 곡에서 이지에프엠은 좀 더 다양한 장르의 시도와 편곡에 힘을 실었다. 특히 비장함을 담은 북소리와 웅장함을 담은 현악 연주는 이 곡의 백미다. 뒤를 이은 은 <여행>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앨범의 분위기를 전환한다. 강한 락사운드로 무장한 이 곡은 빠르고 신나는 연주로 이전의 이지에프엠 음악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는 현 시대의 빠른 삶의 속도를 비판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현한 가사 역시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ㄱㅆ 마이웨이’를 노래한 곡이랄까. 다분히 공격적이면서도 청량감 있는 편곡이 포인트다. 네 번째 곡 <흰 수염 소년>은 동화적 분위기를 가진 곡이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인간은 아닌 생명체, 그러나 누구보다 인간을 사랑하는, 그러나 다른 시선으로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렇기에 가장 인간을 사랑하는, 흰 수염을 가진 사랑스러운 소년의 노래다. 우쿨렐레와 휘파람 소리, 어린 아이들의 합창으로 순수함과 천진함을 더욱 극대화한 이 곡은 듣는 이로 하여금 흐뭇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게 한다. 사실상 마지막 곡 <오늘은>은 가장 이지에프엠다운 곡이다. 앨범의 마무리를 가장 그들다운 곡으로 선택한 것은, ‘다른 시선으로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노래하면서 본인들의 정체성 역시 잃지 않겠다는 이지에프엠의 노련한 선곡이 아닐까 싶다. 삶에서 낯익은 외로움을 마주 했을 때 사람을 통해 털어내기 보다는 혼자만의 시간으로 털어내려는 사람들, 고독을 삶 속으로 받아 들인 사람들의 노래. 그들에게 외로움은 더 이상 괴로움이 아니다. 이지에프엠은 그런 페이소스를 담백한 모던록 사운드에 가볍지 않게 녹여냈다. 마지막 트랙 에필로그에는 [그릇 프로젝트]에 담긴 여러 메시지들을 드러내듯, 다양한 사운드로 채워졌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함께 모여 즐겁게 음식과 차를 나눠 먹으며 자연 속에 함께 되어가는 행복한 웃음 소리, 동물 소리, 식탁 위에 정겹게 놓여지는 그릇 소리,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 이 모든 소리들이 서로 다르지만 조화를 이루기에 아름다운 음악이 되듯, 우리도 다르지만 함께이기에 아름다울 수 있다는 메세지를 보컬 이리의 나레이션과 콧노래로 담아냈다. 그간의 싱글들을 들어왔다면, 우리는 그들의 음악에 더욱 귀 기울일 수 밖에 없다. 밝은 음악 속에 감춰진 내밀한 페이소스, 그리고 진실하게 삶을 꿰뚫어보는 날카로운 시선이야 말로 이지에프엠 음악의 가장 큰 매력이니까. “우리의 그릇에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 우리는 이 마지막 나레이션을 통해 이지에프엠이 말하는 나지막한 희망을 본다. 아울러, 그들이 꿈꾸고 외쳐 왔던 세상, 그런 세상이 좀 더 빨리 오기를 바란다. 아직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또 다른 그릇들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