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가요 다시부르기 8

근대가요 다시부르기 8

유정이의 가요이야기 : [정열의 산보] 1937년에 콜럼비아 회사에서 음반 번호 40756으로 발매된 [정열의 산보]는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였던 채규엽(1906(?)-1949(?)) 씨가 불렀어요. 우리에게는 조금 낯선 이름이지만 채규엽 씨는 초창기 대중가요계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랍니다. 일단 최초의 학사가수라 할 수 있는데요, 그는 일본 도쿄의 주오(中央)음악학교 성악과를 졸업하였고, 유학중이던 1928년에는 서울에서 바리톤 독창회를 가지기도 했지요. 다음으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싱어송라이터(singer-songwriter)라 할 수 있는데요, 1930년 3월에 콜럼비아 회사에서 발매한 [유랑인의 노래]는 채규엽 씨가 작사와 작곡은 물론 노래까지 한 거랍니다. 대중가요의 본질이 ‘위로’와 ‘위무’라는 것을 간파하고 일찌감치 직업 가수로 활동한 그는, 1935년 ‘삼천리사’에서 주최한 ‘레코드가수 인기투표’ 남자가수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죠. 하지만 아직까지 그의 사망 경위와 연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어요. 1949년경에 북으로 갔다가 두만강 근처 탄광으로 끌려가 죽었다는 설만 있을 뿐이죠. 채규엽 씨가 부른 [정열의 산보]는 외국곡으로 추정되는데, 원곡이 무엇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작사가는 김동진(金東進)이라 적혀 있으나, 이 분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답니다. [사랑의 랑데부], [라라 노래하세], [즐거운 내 사람] 등 번안곡을 위시한 10여 곡 정도의 가사를 썼는데요, 한국 가곡의 대표 작곡가인 김동진(金東振) 씨와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랍니다. 앞으로 이 분에 대한 자료와 정보를 찾아봐야 하는데 쉽지는 않네요. 제목에서부터 열정적인 기운이 느껴지는 [정열의 산보]는 당시의 전형적인 ‘재즈송’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요. 젊은이의 사랑을 읊고 있어서 1930년대 모던 걸과 모던 보이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하고요. 가사에 ‘플라타너스’, ‘재즈’, ‘페이브먼트(pavement)’와 같은 외래어를 사용한 것은 신민요를 위시한 여타 대중가요 갈래와 차별되네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구십춘광 쉬 간다 하네/ 꽃그늘 지는 동산에 가세”와 같은 표현에서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와 같은 ‘노세’류의 통속민요 내지 잡가가 떠오릅니다. 우리 가요사에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노세’류의 재즈송판이라 할까요? 콜럼비아 리듬 보이스의 코러스가 채규엽의 노래에 맛깔나게 묻어나는 [정열의 산보]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막연하게 부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과연 그런 일이 있을까 장담할 수 없었죠. 그러던 중, 2012년 가을이었어요.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대중음악 제작•경영’ 전공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중음악제작실무’ 시간에 광복 이전 노래에 대해 강의한 후, 조별로 노래를 한 곡씩 선정하여 리메이크해서 발표하는 수업을 진행했었죠. 그때 채규엽의 [정열의 산보]는 두 조가 리메이크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답니다. 2012년부터 진행해 온 ‘근대가요 다시 부르기’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려 할 즈음 [정열의 산보]가 떠올랐어요. 1930년대 ‘재즈송’ 중에서 이 노래를 빼먹는 것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래서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어요. 학생들이라지만 역시나 현장과 현직에서 작곡가로, 가수로, 기타리스트 등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들이에요. 이 곡을 편곡하고 감독한 최종은 선생님은 박정수 2집 수록곡 [미우나 고우나]와 장윤정 6집 수록곡 [왔구나 왔어] 등을 작곡하는 등 현재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번에 저와 함께 노래한 박정수 선생님은 1991년,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을 불러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분이십니다. 그간 성대구증을 앓는 등 많은 괴로움을 겪고 이겨내면서 노래에 대한 애정만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켜온 분이세요. 이렇게 저와 인연이 되어서 함께 노래 불러주신 박정수 선생님과 편곡자 최종은 선생님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코러스와 기타, 베이스, 드럼 등을 맡아준 선생님들에게도요. 한편 최종은 선생님은 원곡 [정열의 산보]와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을 주는 방식으로 이 노래의 편곡을 시도했어요. 앞부분은 원곡과 완전히 다른 ‘탱고’ 느낌으로 변주했고요, 어쿠스틱 기타와 어쿠스틱 첼로 선율로 탱고 리듬과의 조화를 추구했지요. 바로 이어지는 뒷부분은 앞부분과 완전히 다른 ‘록’적인 느낌으로 반전을 꾀했어요. 강렬한 디스트 기타에 현란하면서도 아기자기한 피아노 선율이 발랄한 느낌을 주지요. 마지막 부분에서는 제가 보컬 애드리브를 시도하여 절정 부분에서 극적으로 노래를 마무리했어요. 2012년 5월부터 시작했던 ‘근대가요 다시 부르기’ 프로젝트가 이번 [정열의 산보]까지 해서 8개의 디지털 싱글로 나왔네요. 2년에 걸친 프로젝트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이었습니다. 애초에 이 작업은 “잊힌 원곡 가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업이자 원로 가요인들과 그들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hommage) 내지는 헌정 작업”으로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노래하고 싶었던 제 오랜 꿈의 결실이기도 하고요. 수익금이 발생하면 원로 가수분들도 돕고 싶다는 꿈을 꾸었으나, 수익금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고 민망하기도 했었죠. 그래도 이렇게 저와의 약속을 지켜가며 이 작업을 이어온 제 자신이 대견스러워요. 앞으로 이 모든 디지털 싱글들을 모아 음반으로 내는 것으로 1930년대 재즈송의 리메이크 작업을 마무리하고 싶은데 어찌될지 모르겠어요. 모든 것은 인연 따라 흘러갈 테니, 저는 그 인연 속에서 그저 최선을 다해야겠죠. 그러다 보면 더러 좋은 일도 생길 것이라 믿으면서요. 이번에 처음으로 리메이크되는 [정열의 산보]를 들으시면서 잠시 1930년대 모던 걸과 모던 보이의 모습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고운 내 임과의 영원한 사랑’도 꿈꾸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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发行时间:201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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