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가요 다시부르기 5
유정이의 가요 이야기 : [희망의 블루스] “[찻집 아가씨], [눈물의 금강환], [인생주막] 등 백발백중의 초히트를 연타하여 1938년도 유행가요계를 휩쓸던 무적(無敵) 가희(歌姬) 박향림 양의 1939년 첫 선물! 과연 1939년도 유행가계를 점칠만한 초특작(超特作)이다.” 오늘날의 신보 광고와 방불한 위의 글은 광복 이전의 대표적 음반 회사인 콜럼비아 회사에서 [희망의 블루스]를 광고한 글이에요. 이 노래는 박영호 작사, 이용준 작곡, 박향림 노래로, 음반번호 40841을 달고 1939년 1월에 발매되었지요. 당시 음반 가사지를 보면, [희망의 블루스]라는 제목 위에 ‘재즈’라는 곡종명이 적시되어 있어요. 그런데 [희망의 블루스]는 그 이전의 밝은 이미지의 향락적인 세계관을 보여주던 여타 재즈송과는 다소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1930년대 후반에는 애상적인 리듬에 비관적인 세계관을 담은 블루스 계열의 노래가 대거 등장했어요. 이는 당시 시대 상황과 무관하지 않아요. 1937년도에 발발한 중일전쟁 이후에 사회 전반에 허무하고도 퇴폐적인 정서가 만연했거든요. 블루지한 리듬에 허무한 정서를 보여주던 블루스는 일본에서 먼저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일본에서 유행한 [別のブル―ス(이별의 블루스)]와 [雨のブル―ス(비의 블루스)]는 우리나라에서 각각 [항구의 블루스](1939년)와 [열정의 블루스](1938년)라는 제목으로 번안되어 인기를 얻었지요. 그리고 이러한 노래들이 당시 타이완에서도 유행한 것을 2012년 7월,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열린 아시아대중음악학회에 참가했다가 알게 되었어요.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비의 블루스]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싱가포르와 타이완 등에서 계속 리메이크 되었다는 것이에요. 1960년대에 싱가포르의 6인조 여성 그룹 ‘뱀파이어스(The Vampires)’는 [비의 블루스]를 [Cold Rain Song]으로 리메이크하였고, 1970년대 타이완의 ‘요야(Yo Ya)’라는 가수도 이 노래를 리메이크 하였어요. 즉 [비의 블루스]는 동시대에 발생해서 이후 시기까지 유행한 대표적인 곡이라고 할 수 있지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리메이크되는 [희망의 블루스]는 [오빠는 풍각쟁이]로 유명한 박향림이 불렀어요. 박향림은 콜럼비아 회사에서 발매된 [항구의 블루스], [열정의 블루스], [희망의 블루스]를 모두 불렀으니, ‘블루스 가수’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희망의 블루스]는 비록 음악적으로 일본식 블루스의 영향을 받았으나 번안곡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작사하고 작곡한 블루스예요. 당시 [희망의 블루스]가 실린 음반의 뒷면에는 [항구의 블루스]가 실려 있어 음반의 앞면과 뒷면이 모두 블루스로 채워져 있지요. 가사 속 인디안 라멘트에서 라멘트가 ‘애가(哀歌)’ 내지 ‘비가(悲歌)’를 뜻하는 ‘lament’라는 것을 지인의 도움으로 알게 되었는데요, ‘인디안의 애가’, ‘범세계주의자’를 의미하는 ‘코즈모폴리턴(cosmopolitan)’, 그리고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고향’을 통해 이 노래가 전반적으로 ‘노스탤지어’를 지향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음악은 계속 블루지하게 진행되지만 마지막 3절의 “희망이 속삭이는 광야로 가자”에서 이 노래의 종착점이 ‘희망’이라는 것도 알 수 있고요. 그래서 노래 제목도 [희망의 블루스]겠지요? [희망의 블루스]의 편곡과 반주는 부산예대의 나진주 교수님께서 맡아주셨어요. 제게 먼저 손 내밀어주신 나진주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나교수님은 가사 전달을 충실히 하는데 집중하면서 5박의 변박을 사용하여 편곡했어요. 그렇게 나교수님의 손을 거쳐 [희망의 블루스]는 ‘모던 재즈’로 다시 태어났답니다. 김일황 선생님(트럼펫), 이광현 선생님(드럼 및 베이스), 최아름 선생님(디렉팅), 장민철 기사님(녹음 및 믹싱), 도정회 기사님(마스터링), 그리고 첫 번째 디지털 싱글부터 다섯 번째 디지털 싱글까지 표지 이미지와 전체 디자인을 모두 맡아준 아버지(장봉기 화백)와 동생(장유진)에게도 고마움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혼자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더군요. 혼자 한 것처럼 보이는 그 어떤 일도 결국 누군가의 도움과 봉사, 그리고 때로 희생이 따르곤 하지요. ‘근대가요 다시 부르기’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만난 한 분 한 분이 제겐 참으로 소중한 분들이에요. 음악으로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인지요? 과거의 노래를 현대에 재현시키는 것은 과거와의 소통을 의미하겠지요? 지금 이 곡을 듣는 분들과도 음악으로 소통하고 싶어요. 때로 어렵고 힘들고 좌절하절지라도 앞으로도 저는 계속 ‘희망’을 노래할래요. [희망의 블루스]처럼요.